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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숲

영리한 양자

by 린컬록닉 2023.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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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정승이 자식이 없어 근심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정승이라면 임금님 다음가는 지위이고,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권세도 부릴 수 있었지만,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승은 여러 가지 궁리 끝에 양자를 데려오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한양에서는 양자로 삼을 만한 마땅한 아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정승은 전국을 누벼서라도 양자를 찾으리라 마음먹고 직접 발 벗고 났다.

 

정승은 한양에서 출발하여 경기도를 거쳐 충청도로 향했다.

 

"정승이 양자를 구하러 다닌대."

 

"누가 그 정승의 양자가 될지 팔자 한번 늘어지겠는걸."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이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아들을 그 정승의 양자로 보내고 싶어 했다.

 

정승은 가는 곳마다 아이들을 눈여겨보았자만 마음에 드는 아이가 없었다.

 

결국 충청도에서도 양자를 구하지 못하고, 전라도로 내려갔다.

 

이 소식을 들은 전라도 감사는 미리 양자가 될 만한 아이들 여러 명을 불러 모아 놓고 정승을 반갑게 맞았다,

 

정승은 그 아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아이들은 대개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고개를 들어라."

 

정승이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정승을 바로 보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아이가 고개를 들고 정승을 쳐다보더니, 눈길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허, 그 녀석 당돌하구나.'

 

정승은 그 아이를 앞으로 불러냈다.

 

그러자 아이는 정승 앞으로 의젓하게 걸어와서 큰절을 하고 물었다.

 

"제가 마음에 드십니까?"

 

정승은 그 아이의 야무진 태도와 말씨에 깜짝 놀랐다.

 

'음, 씩씩한 모습이 보기 좋군.'

 

정승은 무엇보다도 그 아이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내 양자로 들어오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래서 여기 온 것이 아닙니까?"

 

"허허, 그렇구나."

 

"저는 장난꾸러기입니다. 그래도 좋으십니까?"

 

"오냐."

 

정승은 구김살 없는 그 아이를 한양으로 데리고 가서 양자로 삼았다.

 

"사람은 공부를 해야 훌륭해지는 법이니라."

 

정승이 아이에게 가장 먼저 시킨 일은 좋은 스승을 불러다 주고 공부를 하도록 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다.

 

"너는 나무랄 것이 없는데, 공부를 안 하는 게 흠이구나."

 

정승은 아이를 타일러 보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아이는 여전히 밖에 나가서 놀기만 할 뿐 공부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녀석을 열심히 공부하게 할 수 있을까?"

 

정승은 다시 근심에 빠졌다.

 

어느 날, 좋은 생각이 떠오른 정승은 아이를 불러 오늘 내로 창고에 있는 쌀 한말이 몇 알이나 돼는지 모두 세어 놓으라고 했다.

 

정승은 아무리 놀기 좋아하는 장난꾸러기라도 그것을 하려면 하루 종일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이는 정승이 나가자마자 하인을 불렀다.

 

그러고는 되 하나와 저울 한 개를 가져다가 한 되에 싸이 몇 알이 들어가는지 세어 보고, 

 

그 무게를 정확히 달아 놓으라고 시켰다.

 

아이가 시킨 대로 하인이 무게를 다는 동안 아이는 밖에 나가 하루 종일 신이 나게 뛰어놀았다.

 

저녁때 대궐에서 돌아온 정승이 아이에게 아침에 시킨 것을 다 했느냐고 묻자, 

 

아이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정승은 놀랍고 의심스러워 어떻게 했는지를 물었다.

 

"이 일은 아주 쉬워요. 우선 쌀 한 도시의 무게를 잰 뒤, 그 안에 몇 알의 쌀이 있는지 셉니다. 

 

그런 다음 나머지 쌀이 몇 돼 가 나오는지 세기만 하면 되지요."

 

정승은 그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다.

 

하루는 어느 고을에 세 사람이나 한꺼번에 죽은 큰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도무지 범인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정승은 그 문제로 골치를 앓다가 불현듯 양자 생각이 났다.

 

'어쩌면 녀석이 범인을 가려낼지도 모르지.'

 

"아버님, 부르셨습니까?"

 

"그래, 이번에는 나도 풀지 못한 문제를 내겠다. 

 

어느 고을에 세 사람이 한꺼번에 죽은 사건이 일어났단다.

 

한 사람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죽었고, 

 

두 사람은 입에서 피를 흘린 채 각각 손에 돈주머니를 쥐고 죽어 있었다.

 

그리고 방에는 빈 술잔들이 남아 있었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이것뿐이란다.

 

과연 누가 이 세 사람을 죽였겠느냐?"

 

아이는 머리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모두 듣더니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그 세 사람이 모두 도둑입니다. 그리고 서로를 죽인 것입니다."

 

"어째서?"

 

정승은 호기심을 가지고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입에서 피를 흘렸다면 독약을 먹고 죽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머리에 피를 흘린 도둑이 술을 사러 가서 술에 독약을 타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그것을 남지 두 명에게 먹여 그들을 죽이고 돈을 몽땅 차지하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도둑이 술을 사 가지고 오자마자, 남아 있던 두 도둑이 머리를 때려죽였을 것입니다.

 

돈을 저희 둘이 나누어 가지려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한 사람은 머리에 피를 흘리고 죽고, 두 사람은 돈을 나누어 갖고 기뻐서 술을 마시다가 술에 든 독약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옳구나!"

 

정승은 아이의 총명함에 또 한 번 감탄했다.

 

며칠 뒤, 아이가 정승에게 아침 문안 인사를 드리고 나서 말하였다.

 

"아버님, 오늘은 마음껏 뛰어놀게 해 주십시오. 공부는 식전에 해야 머리에 쏙쏙 잘 들어옵니다.

 

그래서 여태껏 아버님이 일어나시기 전에 공부를 하고 낮에는 놀았습니다.

 

정승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녀석이 매일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허허허, 내가 늦게 팔자가 피려고 너 같은 아이를 아들로 맞았구나, 그래, 그래.

 

공부는 너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네가 알아서 하도록 하여라."

 

"그러면 놓고 놀다니?"

 

"노는 것도 공부가 되옵니다."

 

"허허허, 그래, 마음껏 놀아라. 아무렴! 노는 것도 큰 공부가 되지."

 

정승은 아이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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